블록코어 패션의 상업적 조작: 하위문화의 숭고한 저항이 나이키의 재고 처리가 되기까지

거리마다 녹색, 붉은색, 혹은 푸른색의 원색 축구 유니폼을 일상복처럼 헐렁하게 걸치고 다니는 청춘들이 가득합니다. 빈티지 아디다스 가젤이나 삼바 스니커즈를 신고, 데님 팬츠 위에 스포티한 유니폼을 매칭하는 이른바 '블록코어(Blokecore)' 패션입니다. 이번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의 열풍과 맞물려, 무신사나 당근마켓 같은 플랫폼에서는 축구 유니폼 거래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하지요.
많은 미디어는 이 유행을 두고 "스포티즘과 일상의 경계를 허문 현대 패션의 민주화"라며 찬사를 보냅니다. 하지만 이 힙하고 가벼운 옷차림 뒤에는,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게 기획된 거대 자본의 재고 정리 공학과, 그 기저에서 처참하게 박제당한 한 시대 하위문화의 뜨거운 저항사가 숨어 있습니다. 오늘은 패션이라는 이름의 화려한 겉포장지를 한 꺼풀 벗겨내고, 그 속에 담긴 서글프고도 정교한 포섭의 역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려 합니다.
1장. 관객이 쓴 완벽한 가면, 1970년대 영국 '캐주얼스(Casuals)'의 은밀한 탄생
블록코어(Blokecore)의 어원은 아주 평범한 영국의 아저씨를 뜻하는 슬랭 '블록(Bloke)'과 평범함을 추구하는 '놈코어(Normcore)'가 결합한 신조어입니다. 그러나 이 옷차림의 뿌리를 찾으려면 반세기 전, 1970년대 후반의 영국 축구장 골목길로 내려가야 합니다.
당시 영국 사회는 극심한 경제 불황과 대량 실업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미래를 잃어버린 노동자 계급의 청년들은 축구장에서 날것의 에너지를 분출했고, 언론은 이들을 '축구 훌리건'이라 부르며 범죄자 취급을 했습니다. 당시 경찰의 단속 표적은 명확했습니다. 거친 청바지와 가죽 재킷, 군화(닥터마틴)로 무장한 '스킨헤드' 스타일이었지요.
이때 리버풀 FC나 에버튼 FC 같은 클럽들을 따라 유럽 원정 응원을 다니던 영국의 청년들은 묘한 생존 전략을 발견합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원정 경기에서 현지의 값비싼 디자이너 스포츠웨어, 즉 라코스테(Lacoste), 세르조 타키니(Sergio Tacchini), 필라(Fila) 같은 브랜드의 옷들을 훔치거나 사서 입기 시작한 것입니다.
경찰은 고가의 이탈리아 스포츠웨어를 말끔하게 차려입은 청년들이 폭력적인 훌리건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옷차림만 보면 부유한 중산층 테니스 동호회 회원 같았으니까요. 이것이 바로 영국 축구 하위문화 역사에서 가장 강력했던 '캐주얼스(Casuals)'의 탄생이었습니다. 이들은 옷을 일종의 위장막이자, 단속하는 공권력을 비웃는 완벽한 가면으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2장. "Dress well, behave badly" — 부르주아의 옷을 훔쳐 입은 노동자의 저항
캐주얼스 운동의 본질은 단순히 경찰을 속이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슬로건은 "Dress well, behave badly (옷은 우아하게 입고, 행동은 거칠게 한다)"였습니다.
신분과 계급이 철저히 고착화되어 있던 영국 사회에서, 노동자 계급 청년이 부르주아의 전유물이던 고가 테니스 브랜드와 디자이너 의류를 걸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전복적인 정치적 행위였습니다. "우리는 가난하지만, 너희 부자들의 상징을 우리식으로 소화할 수 있다"는 무언의 저항이었지요.
그들은 유니폼이나 팀 목도리 같은 유치한 아날로그 상징을 거부했습니다. 오직 말끔한 스포츠웨어와 아디다스 스니커즈의 희소한 모델(주로 로마, 가젤, 삼바)을 구하는 능력으로 필드 위에서 자신들의 '계급적 우월성'과 '부족적 연대'를 증명했습니다.
옷 한 벌을 사기 위해 주중 내내 공장에서 땀 흘려 일하고, 주말이면 그 귀한 옷을 입고 그라운드 뒷골목에서 경쟁 라이벌들과 온몸으로 부딪쳤던 청년들. 그들에게 패션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자신들의 존엄을 증명하고 기성 세대의 질서에 균열을 내는 가장 뜨거운 저항의 무기였습니다.

3장. 자본의 역습 — 틱톡 알고리즘과 월드컵 재고가 만들어낸 공학적 유행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2026년 오늘, 틱톡과 인스타그램 피드는 온통 유니폼을 입은 세련된 모델들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블록코어에는 과거 노동자 계급이 지녔던 기성 권력에 대한 저항도, 부족적 연대의 비장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철저히 계산된 자본의 마케팅 공학이 들어차 있습니다.
2026 월드컵은 사상 최초로 48개국으로 확대되며 경기 수가 무려 104경기로 늘어났습니다. 경기가 늘어났다는 것은 브랜드들에게 엄청난 광고판이 열렸다는 뜻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엄청난 양의 라이선스 상품과 국가대표 유니폼을 전 세계 시장에 밀어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이키, 아디다스, 푸마 같은 대기업들은 매 시즌 수백만 장의 유니폼을 찍어내지만, 성적이 나쁘거나 비인기 국가의 유니폼은 고스란히 엄청난 악성 재고가 되어 물류창고를 짓누릅니다. 자본은 이 재고를 털어내야만 했습니다.
여기서 탄생한 것이 바로 블록코어의 전 세계적 밈(Meme)화입니다.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들에게 유니폼을 무상으로 협찬하고, 이를 데님이나 가죽 아우터와 믹스매치하여 "쿨하고 힙한 일상 패션"으로 포장하는 알고리즘 마케팅을 대대적으로 전개한 것입니다. 축구에 관심이 전혀 없던 20대 여성들마저 삼바 스니커즈를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철 지난 클럽 유니폼을 몇 배의 리셀가를 주고 사는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자본이 설계한 '유행 공학'의 정밀한 결과물일 뿐입니다.

에필로그. 저항을 삼킨 바코드, 패션이 된 축구의 서글픈 초상
세상의 모든 전복적인 하위문화는 결국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용광로 안에서 녹아내려 하나의 상품 카테고리로 박제되곤 합니다. 1970년대 펑크 록의 쇠사슬과 찢어진 청바지가 백화점 명품관의 디스플레이로 포섭되었듯, 1980년대 영국 캐주얼스 청년들의 날카롭고 위험했던 저항의 유니폼은 2026년 오늘날 백화점 쇼윈도 밑에서 바코드가 찍힌 예쁜 '블록코어 룩'으로 박제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104경기의 월드컵 광고판을 보며,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정교하게 흘려보내는 틱톡 밈을 소비하며, 스스로가 아주 트렌디하고 자유롭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걸치고 있는 유니폼의 바코드 뒤에는, 자신을 통제하려던 권력의 감시망을 무력화하기 위해 옷차림마저 무기로 삼았던 옛 청춘들의 쓸쓸한 그림자가 어른거립니다.
축제는 화려하고, 거리에 흩날리는 색색의 유니폼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 유니폼의 깃을 매만지며 한 번쯤 조용히 질문을 던져봅니다. 우리가 입고 있는 것은 진짜 나만의 개성일까요, 아니면 대기업 물류창고의 재고를 털어주기 위해 고안된 알고리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일까요.

💡 인사이트 요약 * 캐주얼스(Casuals)의 생존사: 블록코어의 시초인 1970-80년대 영국의 캐주얼스 하위문화는 경찰의 스킨헤드 표적 단속을 피하기 위해 부르주아 스포츠웨어를 위장막(가면)으로 삼아 탄생했습니다. * 계급적 저항의 유니폼: 억압받던 노동자 계급 청년들에게 디자이너 스포츠웨어를 입고 행동하는 것은, 그 자체로 고착화된 영국 계급 사회의 질서에 균열을 내던 강력한 저항이었습니다. * 유행 공학과 재고 소진: 현대의 블록코어 붐은 하위문화의 전복성을 제거한 채, 48개국 월드컵 팽창에 따라 발생하는 대기업들의 엄청난 라이선스 의류 재고를 털어내기 위해 기획된 상업적 알고리즘 마케팅의 결과입니다. * 하위문화의 포섭과 박제: 한때 사회를 위협하고 저항하던 청년들의 위험한 유니폼이 오늘날 바코드가 찍힌 가볍고 힙한 소비재 패션으로 박제되어 가는 씁쓸한 자본주의적 현실을 꼬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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